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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ement

직관적인 성향과 반대로 경험을 중요시하는 나는 주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고 불안은 느낀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경험하려 한다. 이 경험은 직접적인 체험이다. 직접 체험함으로써 감각적으로 수집한 데이터는 나만의 체계를 만들고 그 체계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나는 장소와 그곳의 이야기를 수집하는데 선정된 장소는 나의 주변으로 변화하는 곳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혹은 현재에서 미래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곳으로써, 사회, 경제, 기술 혁신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쇠퇴하여 가는 장소이다. 이러한 변화하는 공간이 일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작업의 시작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장 리서치'에 있다. 공간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여러 차례 찾아가 사진과 영상 등으로 표면의 이미지를 담는다. 시간과 쓰임에 의해 변형된 건물과 사물의 모습을 담고 장소와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인터뷰형식으로 수집한다. 이러한 공간탐색은 장소와 그 속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장소 해석을 진행하고 장소적 맥락을 찾는데 그 목적이 있다. 맥락을 찾아내고 만들어내고 드러나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연구한다.

 

내가 감각하고 체화한 데이터에서 건물의 고유한 이미지, 이야기들에서 파생된 텍스트와 소리들을 물질화 시킨다. 작품은 어떤 하나의 재료에 제한하지 않고 다양한 사물을 사용하여 집적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작품의 소재는 현장에서 발견된 작은 천 조각들, 간판, 대문 등으로 장소의 고유함이 드러난 사물이다. 작품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부 또는 일부가 자연물이거나 공업제품으로 전혀 미술을 의도하지 않고 만든 사물들을 아상블라쥬하여 나타낸다.

칸트(Emmanuel Kant, 1724-1804)에 따르면, 예술이란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에서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 공간이 가진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일상의 사용된 사물들과 그 공간이 가진 아름다운 모습을 찾고 대상이 가진 고유함, 역사적이고 역동적인 부분을 고유의 장소적 맥락으로 나타낸다

대상이 가진 본질적인 모습을 변형하지 않고 인공물 즉, 건물들이 가진 장소적 맥락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시각적으로 미약하게 설정하거나 사라지게 한다. 혹은 비현실적으로 인공물의 크기를 확대해 공간과 공간 간의 경계나 인공물 간의 경계를 화려한 색상으로 처리함으로써 장소에서 대상으로, 대상에서 장소로 통합된 체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러한 장소적 개입은 대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함으로써 사회적 맥락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장소의 역사성과 문화성 등을 기반으로 ‘나’ 라는 한 인간 중심으로 장소적 경험의 이해를 기반으로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작품에서 사용되는 재료 중 하나인 스와치란 계절감을 보는 용도로 사용되는 직물의 견본을 말한다. 봉제골목들이 위치한 잠실, 아현동, 동대문 일대에서 스와치(조각천)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수집하였다. 수집된 스와치들을 바느질이라는 반복하는 행위로 이어 붙인다. 꿰고 이어붙이는 바느질은 이야기를 나눈 여러 사람과 함께하면서 내가 감각하고 체험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거대한 크기로 변환된 천들은 화려한 색상으로 나름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존재감을 과시한다. 거대한 크기로 만들어진 작품은 공간에 개입하게 되면서 장소특정적 특징을 가진 설치물이다. 작품은 방치된 교각, 곧 사라질 공연장의 내외부 등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조형적으로는 인식되지 않는 간과된 공간들이 배경이 된다. 이러한 공간들에 반응하며 작품들이 더해지며 작품은 일종의 혼란을 조성하여 한 장소의 기존 질서에 비판적으로 개입한다. 장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작품이 설치되어 새로운 맥락으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장소 특정적 작업 자체를 하나의 '장소'로 보고, 전시장 안에서 역시 일상 속에서 찾아낸 가치 있고 아름다운 표현들을 확장하여 다채로운 색상과 웅장한 규모로 만든 설치물들이 배치된다. 맥락을 찾아내고 만들어내고 드러내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영상자료로 만들어 아카이브 했던 사진과 이야기들을 함께 보여준다. 표면을 뚫고 나오는 사운드와 텍스트들은 화려한 설치물들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관람자가 표면에서 찾지 못 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두도록 의도한다. 

 

 

작품은 제작과 설치까지 모든 과정이 반복되고 집적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오스티나토 음형과 닮아있다. 오스티나토는 라틴어로 ‘고집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지는 옵스티나투스 : obstinatus에서 유래되었다. 단어 그대로 고집스럽게 하나의 주제를 반복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오스티나토는 짧은 선율이 반복되는 특징이 있다. 특정한 가사와 선율이 계속되면서 그 위에 화음이 덧붙여지는 오스티나토처럼 반복하고 이를 통해 리듬을 생성하고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결론이 아닌 서로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을 주는 것이다.

전시에서 관람자는 관객이자 작품뿐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관람자는 예술을 체험하고 공간 안 작품 속에서 하나의 오브제로써 스스로 작용하며, 내가 그랬듯이 다양한 경험과 사유를 마주하게 된다. 관람자가 예술을 체험하는 그 순간 또한 작가에 의해 기록되며, 다시 한번 작업의 시작이 된다.

 

모더니즘이 역사적, 장소적 맥락의 특수성을 거부하고 공공성만을 지향하였다면, 이후의 포스트모던, 지역주의 등은 다양한 관계, 환경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단절되었던 장소적 맥락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장소적 맥락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여 해체적인 이미지를 작품의 소재로만 차용하였을 뿐, 끊임없이 변화의 욕구를 수용해내지 못했다. 작품을 통해 그 한계점을 시사하고 장소가 맥락성이 고정화된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흐르고 변화하는 유동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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